Sweet Desire (달콤한 욕망) - Somin Park (Curator, Gong Art Space)
< Sweet Desire >
Play desire with the 'sweet whisper'

Somin Park (Curator, Gong Art Space)


Candy is a sweet melting thing that's like a whisper, one that you cannot deny. The 'okchun' candy is red, yellow, and relishing. It may seem like a an everyday candy or maybe not, but it's definitely a treat for a special day, urging you to taste it. The 'okchun' is a precious Korean traditional candy that appears at the ancestral rites.

The 'okchun' is not a childhood metaphor to the artist, but a residue from deficiency that became a desire. The artistic world of the artist began with everyday candy but converted to the 'okchun' because it was something special, not easily possessable. In other words, the 'okchun' candy is an ideal, intangible and undeniable desire.

The artist carefully presents the 'okchun' into her own visual language, letting it become her desirable symbol. Jacques Lacan's Module on Desire, the one that brings desire into existence is far from the concept of the symbol being discovered from the metonymy structure. The symbol that was repressed from other symbols in the darkness reaches out toward the light, but continues to remain under the fictitious symbols. We, at times, seem to regard these unidentified symbols to the hidden truth based on other symbols. The hidden inner side becomes the signified, while the expressed outer side becomes the symbolized.

The 'okchun' is the imagery symbol of the artist. However, the artist does not limit this to her personal desire but stretches it into the concept of 'play', converting it to amusement. No longer is desire suppressive. As the artist becomes an adult, she liberates herself from the socialization of being suppressive to desire, and reaches beyond to desire as a resolution.

As we grow up, we learn to suppress desire or express in other ways. Expressing desire is a taboo in the society, also considered negative. However, the artist rejects the instinctive concept of 'wanting to taste' and 'yearning to have' and converts it into her own creative concept of 'play', asking us the following: "how is your desire embodied?"

The 'okchun' is embodied into three visual languages, exploration, modification and dissolution. The artist's exploration has brought her to modification, while modification has brought her to dissolution. The artist's desire of 'play' is presented into variations. From her prior exhibition, the exploration stage, the 'okchun' was embodied into fabric, portraying warmth and simplicity. At this exhibition, the modification, is revealed as itself, signifying the scope of her desire.

The 'okchun' is boasting its relishing color or melting flow filling the screen. The artist, a creator that can alter desire, contemplates the flow of desire that burgeons and melts. The installation work shows the nature of 'okchun' that naturally melts and spontaneously dissolves. As time goes on the 'okchun' dissolves, and a new desire arises. Eventually, 'okchun' will bring another desire, replacing the dissolved 'okchun'. This is how the artist considers desire. Sometime in life desire dissolves, bringing a new one. Humanbeing has the power to reproduce desire that is positive or negative.

In this piece of work, the artist portrays the 'okchun' as desire and the 'tongue' as amusement. The 'tongue' is another visual language that embodies an adult's desire to skilfully express oneself.

The artist's desire implies exposure and confidence. We look forward to her next bold visual language, one beyond 'okchun'. The artist's perspective and social years of experience will continuously change. How will her desire to 'play' convert? Will the 'okchun' disappear, alter or replace itself? To be continued...

 




< 달콤한 속삭임으로 욕망을 유희하다 >

박소민 (큐레이터, 공아트 스페이스)


  사탕이라는 것은 달콤한 녹아 없어져 다시 찾게 되는 뿌리칠 수 없는 속삭임이다. 특히, 옥춘은 빨갛고, 노란 색색의 향연이 보기만 해도 탐스럽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구경할 수 없던 이 사탕은 어릴 적 누구든 보자마자 먹어보고 싶은 충동의 그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옥춘'은 어릴 적 동심의 은유적인 산물이라기보다 실재적인 결핍이라는 미끄러짐에서부터 발생하는 잔여물을 넘어 욕망이 되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본래 일반적인 사탕에서 시작한 그녀의 예술세계는 어린 시절 소유해보지 못했던 사탕인 '옥춘'으로 전환되는데, 사실 작가가 사탕이라는 소재에 집착하는 본래적인 원인은 소유하지 못했던 사탕이었던 옥춘이 그 근원이 되었다고 한다. '옥춘'은 한국의 전통적인 사탕으로 보통 제사와 같은 특별한 때만 쓰였던 귀한 먹거리였다. 이런 의미에서 아이였던 작가가 바라보았던 옥춘은 마치 손닿을 수 없는 것, 이상향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지희 장 작가는 비로소 성인 된 이후에 '옥춘'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어, 작가의 시각언어로 등장시키고 작가의 욕망의 물질적인 기표가 되었다. 자크 라캉의 욕망이론에 붙여 진리가 기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환유의 구조 속에서 되찾아지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환유의 구조 속에서 원래 기표는 다른 기표들의 관계 속에서 매몰되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어둠 속으로 억압된 기표는 지상으로 나가려는 욕망을 간직한 채 허구의 기표들 아래에서 꿈틀거리기만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것을 다른 기표들 간의 틈새 혹은 행간에서 찾아 그것을 감추어진 진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기표와 기의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지와 같듯이 작가 지희 장의 숨겨진 내면은 기의가 되고 그것의 표출은 기표가 되는 것이다. 즉 '옥춘'은 작가의 내면의 심상의 기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단순히 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결과적인 '욕망'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선망의 대상에서 끌고 내려와 놀이로 변화시킨다. 즉 유희가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작가에게 있어서 욕망은 표출할 수 없는 억누름의 그것이 아니다. 작가는 성인이 된 후 사회화된 의식 속에 욕구의 제한을 받는 보편성을 거부하고 제한을 넘어 해소로써의 욕망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른이라는 범주로 간주되는 순간 욕망에 관해 애써 숨기거나 혹은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배우게 된다. 당당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와 인간관계에서 금기시 되는 것으로 간주되곤 하는데, 이것은 긍정적인 것 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시선을 뒤로하고 "먹고 싶다" 혹은 "가지고 싶다"의 본능적인 차원도 간단히 넘어버리고 유희의 선상에서 욕망을 두고 작가의 시각으로 변형하고 바꿔 놓고 우리에게 "당신의 욕망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 라고 당돌하게 물어 보는 듯하다.

  그녀의 욕망을 담고 있는 '옥춘'은 현재까지 3가지의 시각언어로 구현되는데, 탐색과 변형 그리고 소멸이다. 작가의 '옥춘'에 대한 탐색은 변형을 낳았고 변형은 욕망의 소멸에 까지 이르게 된다. 이렇듯 작가는 욕망에 대한 유희를 다양한 변주를 통해 보여준다. '옥춘'을 시각예술로 구현하기 위한 물성의 변화는 그녀가 '옥춘' 즉 욕망을 대하는 심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작업에서 알 수 있듯이 천이라는 특유의 따뜻함과 소박함의 소재를 통해 표현된 '옥춘'은 마치 수줍기까지 했다면 현재는 조금 직접적으로 본래적 형태를 부끄럼 없이 들어내는데, 전자가 옥춘에 대한 탐색전이라면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줄 단단한 물성 매끈한 표면은 실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크기의 변형을 가지고 온 거대한 옥춘은 그녀가 가진 욕망의 크기일 것이다. 욕망의 고립이 아닌 욕망을 시각언어로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을 은유와 환유의 과정을 버리고 맨 몸으로 발칙하게 들어내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탐색을 통해 유희의 방법을 변형 시키는데, '옥춘'들은 완벽한 둥근 형태로 본래 가지고 있던 탐스러운 색을 뽐내거나 혹은 흐르고 녹아 화면 가득히 터져나올듯하다. 욕망을 마음대로 부풀리고 확대시키고 녹아가는 시간성마저도 손아귀에 두고 욕망을 변형시키는 창조자의 자세로 관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재의 '옥춘'을 차용한 설치작품에서 옥춘은 어떠한 장치 없이 녹아 없어지는 본래 물성이 가지는 특성을 그대로 들어냄으로써 자연발생적으로 소멸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옥춘'들이 시간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하나씩 사라지면 욕망은 소멸 되고 새로운 욕망의 탄생을 알린다. 결국은 녹아 없어지는 물성을 가진 '옥춘' 사탕은 또 다른 욕망을 낳고 새로운 사탕으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가가 욕망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언젠가 욕망은 소멸될 것이고 다른 형태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힘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기표는 욕망을 의미 하는 옥춘 이외에도 욕망을 스스럼없이 유희하는 '혀'가 나온다. 작품에 등장하는 '혀'는 욕망을 감추려하지 않고 드러내는 또 하나의 시각언어로 성장한 어른이 욕망을 다루는 능숙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지희 장의 욕망은 드러냄과 당당함이 함의되어 있다. 앞으로 그녀의 욕망이 사탕을 넘어 어떤 소재로 또 다시 대담한 시각언어로 표현할 지 기대가 된다. 그 이유는 그녀는 어른으로 간주된 범위 안에서 살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그녀의 사회적 연륜과 시각은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가 유희하고자 하는 욕망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욕망의 기표가 되었던 옥춘이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다른 형태로 변화할 것인가, 또는 다른 기표로 대체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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